한성백제와의 만남 송파문화재야행

석촌호수

한성백제와의 만남 송파문화재야행

석촌호수

석촌호수 

Seokchon Lake 

서울 도심 속 호수로 사랑받는 석촌호수는 본래 한강의 본류인 송파강이었습니다. 현재 아파트숲을 이루는 잠실 일대는 잠실도, 부리도란 두 개의 섬마을이었습니다. 

조선시대 송파나루에 생긴 큰 시장 ‘송파장’

조선시대로 거슬러 올라가면 지방에서 서울로 올라가기 위해서는 

한강을 건너야 하기 때문에 곳곳에 나루터가 생겨났는데 송파나루도 이 중 하나입니다. 현재 석촌호수 서호와 동호를 사이를 지나는 송파대로가 있는 곳이 조선시대 송파나루가 있던 자리입니다.

 

강나루는 사람들이 이동하는 교통로이자 물자를 운반하는 수송로입니다. 많은 사람이 오가고 팔도의 특산물이 모이다 보니 자연스럽게 송파장이 만들어졌습니다. 시장 주변에 객주가 270호나 될 만큼 성업을 이뤘고 조선시대 15대 장터 중 하나로 성장할 만큼 규모가 컸습니다. 상설시장으로 번성했던 송파장은 안타깝게도 1925년 을축년 대홍수로 물난리를 겪으며 쇠락의 길을 걷게 됩니다.

송파산대놀이의 시작은? 


시장을 활성화시키기 위해서는 많은 사람들을 끌어모을 즐길거리가 필요했습니다. 흥겨운 놀이판에서 모두가 즐길 수 있는 탈춤, 송파산대놀이는 이렇게 시작됐습니다. 정월대보름, 단오, 백중, 한가위 등 명절날 장터에서 열려 뜨거운 호응을 받았지요. 


송파시장 상인들의 놀이문화를 뿌리로 하는 송파산대놀이는 춤, 재담, 창이 어우러져 양반들을 비꼬고 남녀상열지사를 다룹니다. 이 같은 해학과 풍자 속에서 단단한 공동체 문화가 만들어졌습니다.

 

약 250년의 역사를 지닌 송파산대놀이는 중요무형문화재 제49호로 지정됐으며 현재 서울에서 유일하게 전승되는 탈춤입니다.

잊지 말아야 할 아픈 역사의 흔적 ‘삼전도비’ 


잠실롯데호텔 건너편 석촌호수 서호에는 묵직한 교훈을 일깨워주는 아픈 역사의 흔적이 있습니다. 삼전도비입니다. 병자호란에서 패배한 후 조선의 왕 인조가 오랑캐인 청나라 황제에게 항복한 치욕의 현장을 적나라하게 기록한 비석입니다. 청의 요구로 세워진 비석으로 정식 명칭은 ‘대청황제공덕비(大淸皇帝功德碑)’이지만 삼전도에 설치해 ‘삼전도비’라고도 부릅니다. 비문은 한자, 만주어, 몽골어로 새겨졌기 때문에 금석문 연구에 중요한 가치를 지닙니다.

 

삼전도비는 청일전쟁 이후 고종의 명으로 쓰러뜨렸으나일제강점기에 다시 그 자리에 세워졌고 1956년에는 정부 주도로 땅속에 묻혔습니다. 1963년 홍수로 비석이 다시 모습을 드러내자 반성의 역사로 삼자는 뜻에서 석촌동으로 옮겼다가 2010년 현재 위치인 석촌호수 쪽으로  옮겼습니다.

 

이제는 치욕의 역사도 냉정하고 객관적으로 바라볼 만큼 국격과 역사 의식을 갖추게 됐지요.전쟁에서 패한 후 노예로 끌려간 백성이 전 인구의 10%. 어마어마한 숫자입니다. 명청 교체기 국제 정세를 오판한 지배층의 아둔함이 어떤 결과를 불러왔는지 삼전도비가 조용히 말해줍니다.

 

흥망성쇠 역사의 퇴적층이 차곡차곡 쌓인 석촌호수 일대는 도심 속 호수 공원으로 많은 사랑을 받고 있습니다.


석촌호수

Seokchon Lake

서울 도심 속 호수로 사랑받는 석촌호수는 본래 한강의 본류인 송파강이었습니다. 현재 아파트숲을 이루는 잠실 일대는 잠실도, 부리도란 두 개의 섬마을이었습니다.

조선시대 송파나루에 생긴 큰 시장 ‘송파장’


조선시대로 거슬러 올라가면 지방에서 서울로 올라가기 위해서는 

한강을 건너야 하기 때문에 곳곳에 나루터가 생겨났는데 

송파나루도 이 중 하나입니다. 

현재 석촌호수 서호와 동호를 사이를 지나는 송파대로가 있는 곳이

 조선시대 송파나루가 있던 자리입니다.

 

강나루는 사람들이 이동하는 교통로이자 물자를 운반하는 

수송로입니다. 많은 사람이 오가고 팔도의 특산물이 모이다 보니 

자연스럽게 송파장이 만들어졌습니다. 

시장 주변에 객주가 270호나 될 만큼 성업을 이뤘고 조선시대 

15대 장터 중 하나로 성장할 만큼 규모가 컸습니다.

상설시장으로 번성했던 송파장은 안타깝게도 1925년 

을축년 대홍수로 물난리를 겪으며 쇠락의 길을 걷게 됩니다.

송파산대놀이의 시작은?


시장을 활성화시키기 위해서는 많은 사람들을 끌어모을 즐길거리가 필요했습니다. 

흥겨운 놀이판에서 모두가 즐길 수 있는 탈춤, 송파산대놀이는 이렇게 시작됐습니다. 

정월대보름, 단오, 백중, 한가위 등 명절날 장터에서 열려 뜨거운 호응을 받았지요. 


송파시장 상인들의 놀이문화를 뿌리로 하는 송파산대놀이는 춤, 재담, 창이 어우러져 양반들을 비꼬고 남녀상열지사를 다룹니다. 

이 같은 해학과 풍자 속에서 단단한 공동체 문화가 만들어졌습니다.

 

약 250년의 역사를 지닌 송파산대놀이는 중요무형문화재 제49호로 지정됐으며 현재 서울에서 유일하게 전승되는 탈춤입니다.

잊지 말아야 할 아픈 역사의 흔적 ‘삼전도비’


잠실롯데호텔 건너편 석촌호수 서호에는 묵직한 교훈을 일깨워주는

 아픈 역사의 흔적이 있습니다. 삼전도비입니다. 

병자호란에서 패배한 후 조선의 왕 인조가 오랑캐인 청나라 황제에게 

항복한 치욕의 현장을 적나라하게 기록한 비석입니다. 

청의 요구로 세워진 비석으로 정식 명칭은 ‘대청황제공덕비(大淸皇帝功德碑)’이지만 삼전도에 설치해 ‘삼전도비’라고도 부릅니다.

비문은 한자, 만주어, 몽골어로 새겨졌기 때문에 

금석문 연구에 중요한 가치를 지닙니다.

 

삼전도비는 청일전쟁 이후 고종의 명으로 쓰러뜨렸으나일제강점기에

다시 그 자리에 세워졌고 1956년에는 정부 주도로 땅속에 묻혔습니다. 1963년 홍수로 비석이 다시 모습을 드러내자 반성의 역사로 삼자는

뜻에서 석촌동으로 옮겼다가 2010년 현재 위치인 석촌호수 쪽으로 

옮겼습니다.

 

이제는 치욕의 역사도 냉정하고 객관적으로 바라볼 만큼 

국격과 역사 의식을 갖추게 됐지요.

전쟁에서 패한 후 노예로 끌려간 백성이 전 인구의 10%. 

어마어마한 숫자입니다. 명청 교체기 국제 정세를 오판한 지배층의

 아둔함이 어떤 결과를 불러왔는지 삼전도비가 조용히 말해줍니다.

 

흥망성쇠 역사의 퇴적층이 차곡차곡 쌓인 석촌호수 일대는 

도심 속 호수 공원으로 많은 사랑을 받고 있습니다.